성경 해설 · 출애굽기 · 설교 02
불타는 떨기나무
여든 살 모세는 바로 왕의 집에서 누리던 권력을 뒤로하고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돌봅니다. 그곳에서 불이 붙었지만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를 만납니다. 그에게 나타나신 거룩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모세에게 이집트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연속 강해의 두 번째 시간에 토비 홀트 박사는 3장을 살펴보며, 이 만남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 그리고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정체성을 설명합니다. 모세의 질문은 ‘제가 누구입니까?’이지만 하나님의 답은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으며, 바로의 저항마저 하나님의 이름이 선포되는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본문: 출애굽기 3장. 원본 설교 날짜: 2023년 1월 15일.
이 에피소드는 토비 홀트 박사의 영어 설교를 한국어 청취자를 위해 각색한 것으로, 홀트 박사의 승인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음성 역시 홀트 박사의 승인 아래 본인의 목소리를 인공지능(AI)으로 재현한 것이며, 홀트 박사가 한국어로 직접 설교한 실제 녹음이 아닙니다.
00:00 — 소개
00:04 — 낮아진 모세
03:34 —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
05:28 —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신실하심
11:21 —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14:11 —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
16:10 —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24:06 —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30:02 — 바로의 저항과 하나님의 영광
챕터
- 0:00 소개
- 0:05 낮아진 모세
- 3:34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
- 5:28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신실하심
- 11:22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 14:11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
- 16:11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 24:06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 30:03 바로의 저항과 하나님의 영광
원고
New Geneva: 자세한 정보는 newgeneva.org. Holt: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모세를 만나셨습니다. 이 사건에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새롭게 시작한 열 편의 연속 강해, 두 번째 시간에 함께해 주십시오. 지난주에는 아기였던 모세를 만났습니다. 기억하시듯 1장에서 모세는 바로의 진노로 목숨이 위험했던 갓난아기였습니다. 이제 3장에 이르면 모세는 좀 더 나이가 들었습니다. 80년이 흘렀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 이르면 모세는 노인입니다. 얼핏 보면 세월이 모세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모세를 처음 만났던 1장을 돌아보십시오. 다시 말해서 모세는 아기였습니다. 성경은 그를 아름다운 아기라고까지 말합니다. 아름답고 총명하고 생기 넘치는 이 아기는 강물에 떠내려 보내집니다. 그리고 출애국기 2장으로 가면 젊은 모세를 만납니다.
그는 바로왕의 집에서 자랍니다. 힘이 있습니다. 바로왕의 집에서 자라면서 권력과 권위도 갖습니다. 그러나 3장의 첫머리에 이르면 그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3장에 들어서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습니다. 2장의 끝부분에서 모세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집트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가 이집트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바로가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달아났습니다. 도망쳤습니다 미디안이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미디안에 도착한 그는 아주 보잘것 없다고 여겨지는 일을 맡았습니다. 목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기 양떼를 돌보는 목자 말하자면 자기 양사업의 최고 경영자도 아니었습니다. 장인을 위해 일했습니다. 보잘것 없는 일 가운데서도 장인의 양을 돌보며 장인 밑에서 일하는 것은 서열의 맨 아래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전에 이집트 사람으로 살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일은 더 나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세기 46장에서 이런 말씀을 읽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모든 목자를 혐오합니다. 창세기 46장은 이집트 사람들이 목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려줍니다 성경은 모든 목자를 혐오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다른 번역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역겨운 존재였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이전에 이집트 사람으로 살았던 모세는 바로왕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온갖 권위와 권력과 힘, 보석과 병거와 그 모든 것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미디안에서 목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말 역겹다고 여겼을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읽을 3장으로 가봅시다 모세는 늙었습니다. 자기보다 더 늙은 사람의 양을 돌보고 있습니다 한때 역겹다고 여겼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유했던 세월, 특권을 누리던 세월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머리는 희어졌습니다. 몸도 좀 삐걱거립니다. 이런 옛말을 아십니까?
늙은 회색 암말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바로 모세가 그렇습니다. 과거의 그가 어떠했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월과 상황이 그를 낮추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이 무엇을 뜻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이제 그가 준비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철병거와 칼을 지닌 마흔 살 모세는 하나님이 생각하신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팡이 하나밖에 없는, 몸이 삐걱거리는 여든 살 모세는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사용하려 하셨습니다. 여든 살 모세면 충분했습니다. 1절부터 3절을 살펴본 뒤 이 장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이 이 시기의 모세를 어떻게 사용하기로 하시는지 보겠습니다. 1절부터 3절입니다 모세는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고 있었다. 기억하십시오. 자기보다 더 늙은 사람의 양을 치는 노인입니다.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었습니다.
모세는 양떼를 광야의 뒤편으로 이끌고 가다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가운데서 타오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모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그 나무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말했다. 내가 이제 옆으로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어째서 저 떨기나무가 타서 없어지지 않는가? 조금 전에 말했듯 3장은 80살 목자 모세가 호렙 산이라는 곳을 돌아다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호렙이라는 이름은 시내와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호렙은 시내입니다. 모세가 그곳에 있습니다. 광야의 뒤편입니다. 성경은 그곳에 사실상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을 굳이 알려줍니다. 모세는 이 세상에서 혼자인 듯합니다. 광야의 뒤편에서 양을 돌보다가 무언가를 봅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을 봅니다. 떨기나무인데, 불이 붙었습니다. 물론 떨기나무도 보았고 불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둘이 함께 있으면 보통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떨기나무가 타서 없어집니다. 하지만 이 떨기나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성경은 그것이 타서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걸음을 멈춥니다. 잠깐, 이건 살펴봐야겠어. 이상한 일이야. 여러분이 폭포를 본다고 해봅시다. 폭포 자체도 흥미롭지만, 물이 거꾸로 산 위로 올라간다면 어떻겠습니까?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대신 위로 솟아오른다면요? 잠깐, 멈춰야겠어. 휴대전화를 꺼내서 이걸 확인해야겠어. 그렇게 말할 겁니다. 모세도 그런 반응을 보입니다. 무슨 일인지 가서 봐야겠어. 그리고 그렇게 합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봅시다. 그는 떨기나무를 봅니다. 불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모세가 다가갈 때 이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4절부터 6절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모세가 보려고 옆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그가 대답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곳으로 가까이 오지 마라.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보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전에 주일학교나 교회에서 신현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뜻하는 신현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그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신현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그리스어 두 요소가 합쳐진 말입니다. 첫 번째는 테오스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테오스, 하나님. 뒤에 파이노는 나타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신현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눈에 보이고 감각으로 알 수 있는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불타는 떨기나무의 형태로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다른 신현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인도받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과 연기로 인도받았습니다. 그것이 신현의 한 예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임재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 있도록 감각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4절부터 6절에서는 하나님이 불타는 떨기나무의 형태로 나타나셔서, 감각으로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 형태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아마 오늘 아침 자세히 살펴볼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드러나는 한 가지 특징, 곧 불에 주목하겠습니다.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하나님의 본성은 자주, 그리고 일관되게 불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순결하심을 설명할 때 불을 자주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표현할 때도 사용합니다. 불에 관한 모든 구절을 이야기하려면 앞으로 한 시간을 써도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몇 가지만 골라보겠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다니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보니 보좌들이 놓이고 옛적부터 계신 분이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털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보좌는 불꽃이었고 그 바퀴에는 타오르는 불이 있었다. 신명기와 히브리서에는 반복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태워 없애는 불이시다. 성경 곳곳에 불에 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출애굽기 3장 본문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말씀입니다. 구약 선지자 말라기가 있었습니다. 말라기 3장에서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며, 자신을 정련하는 불로 표현하십니다. 흙과 진흙과 피와 땀으로 더러워진 강철 칼을 불 속에 넣으면 그 밖에 모든 것은 타서 떨어져 나갑니다. 남는 것은 강철 자체입니다. 그 강철조차 불을 통해 단련됩니다 말라기 3장에는 그런 그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정련하는 불이다. 불 자체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라기 3장에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정련하는 불이지만, 나주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아, 너희가 소멸되지 않는 것이다. 내게는 불과 같은 특성이 있다. 나는 진노와 거룩함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과거에 너희에게 약속을 주었고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너희는 소멸되어 마땅하지만 소멸되지 않는 것이다. 말라기 3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기의 불같은 본성이 그들을 소멸시키지 않았음을 상기시키셨습니다 그들이 소멸되어 마땅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이 여기서 불타는 떨기나무의 형태로 모세를 만나실 때,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의 불은 그 떨기나무를 태울 수도 있었습니다. 떨기나무를 태워버릴 수도, 모세를 태워버릴 수도, 산을 태워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온 땅을 태워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떨기나무는 상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다른 어떤 것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밤의 불기둥으로 그들 가운데 다니실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피어오른 불처럼, 이 떨기나무 가운데 피어오른 불도 이스라엘을 해치지 않았던 것처럼 떨기나무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뜻은 이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불같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공정하십니다. 의로우십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성품을 지니신 분이지만 자기 백성의 유익을 위해 그 힘을 억제하십니다 자기 백성이 가까이 오도록 허락하십니다 자기 백성이 그분과 함께 살도록까지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그것을 봅니다. 이것은 백향목이 아닙니다 볼품없는 떨기나무입니다 어느 정도 이스라엘을 나타내는 이 볼품없는 떨기나무는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셔도 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내가 너희에게 약속을 주었다. 내가 너희에게 약속을 주었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불타는 떨기나무의 그림에서 어느 정도 하나님의 언약적 성품이 드러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불같은 본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위험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민수기에는 고라의 반역이 있습니다. 고라의 반역입니다. 기억하시듯 고라의 반역 뒤에 주님께로부터 불이 나와 250명을 태워 없앴다고 읽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그 불을 억제하시며,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억제를 하나님이 거룩하지 않으시거나 행동하실 수 없거나 행동하지 않으실 징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한때 내게 가까이 오는 자들은 나를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5절에서 모세에게 주신 경고를 설명해 줄지도 모릅니다. 이곳에 가까이 올 때 조심하여라. 아니, 이곳으로 가까이 오지 마라.
신을 벗어라.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다음 말씀인 7절부터 10절을 보겠습니다. 7절입니다. 주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받는 압제를 보았다. 그들을 부리는 감독들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고, 그들의 고통을 안다. 그래서 내가 내려와 그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건지고 그 땅에서 좋은 땅,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 한다. 가나안 사람, 헷 사람, 아모리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이다. 이제 보아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이르렀고,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억압하는 것도 내가 보았다. 이제 와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게 하겠다. 성경에는 위로가 되는 말씀이 많습니다. 바로 여기에 그 중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처지에 짓눌려 있습니다. 모든 일이 끔찍하게 흘러갔습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최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봅니까?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자녀가 부르짖을 때 내 귀는 그 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운동장이나 군중 속, 놀이공원 같은 곳에서 이런 부모를 본 적이 있습니까? 갑자기 일어서거나 주위를 둘러봅니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 소리에 그 부모는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소리 한가운데서 자기 아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기 때문에 긴장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부모였던 적은 있습니까? 운동장이나 놀이공원, 아니면 마가리타빌 같은 곳의 군중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온갖 소음 가운데 갑자기 자기 아이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내 아이라는 것을 알아듣기 때문에 반응합니다.
그 건물 안의 다른 어떤 아이에게도 하지 않았을 방식으로 반응하고 응답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주의 깊게 듣고 있다. 내 자녀가 내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 음성을 듣는다. 나는 그들을 안다. 그들의 곤경에 응답하겠다.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겠다. 7절부터 10절에서 그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는 압제가 가득합니다. 당시의 세계에서, 심지어 그 지역에서 일어난 압제는 이것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백성의 부르짖음, 나에게 부르짖는 내 자녀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받는 압제를 들었고 그들을 압제하는 자가 누구인지도 안다 내가 내려와 그 압제자를 다루겠다 내가 내려와 응답하겠다 모세야 나는 좋은 아버지이므로 행동하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행동입니까? 여기서 여러분이 모세라면 아멘, 아멘, 그렇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이 억울함을 풀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할 것입니다. 아마 이때는 매우 기쁠 겁니다. 하지만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려는 걸까요? 어떤 응답을 주실까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무언가를 하실 것이고,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정확히 무엇인지 모릅니다. 10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모세는 그 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10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아느냐?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아느냐? 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었다. 내가 어떻게 응답하려는지 아느냐? 너를 보내겠다. 너를 보내겠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게 하겠다. 여기서는 가엾은 모세의 처지를 좀 이해해줘야 합니다. 이미 몇 차례 놀랐습니다. 기억하십시오. 80살입니다. 광야의 뒤편에 있습니다.
오늘도 지난 날들과 똑같이 뜻밖의 일 없이 지나가리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벌써 한 번 놀랐습니다. 첫 번째 충격은 타서 없어지지 않는 불타는 떨기나무입니다. 좋아요, 가서 살펴봅시다. 두 번째 충격은 불타는 떨기나무가 자기에게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천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그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만 해도 놀라운 일입니다. 미디안에서 사건 많은 날들을 꼽는다면 거의 맨 위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아무리 놀라웠어도, 10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용에 모세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그 해결책으로 모세 자신을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얼굴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실상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잠깐만요. 이야기의 앞부분은 이해합니다. 고통이 있고, 하나님이 응답하시겠다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 제 문제는 뒷부분입니다. 해결책으로 저를 보내시겠다는 겁니다. 1980년대에 자랐다면 이런 말을 기억하실 겁니다. 윌리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바로 그런 장면입니다. 모세는 어리둥절합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11절부터 12절에 나오는 반응을 봅시다. 11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말했다. 제가 누구입니까? 제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네가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뒤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다. 기억하십시오. 호렙, 곧 시내입니다. 자, 1절부터 10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십니다. 날씨 이야기를 하지 않으십니다.
미디안의 스포츠 경기 같은 이야기도 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십니다. 모세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었다. 그래서 너를 보낸다. 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었다. 그래서 너를 보낸다. 11절에서 모세는 이해할 만한 질문을 합니다. 광야 뒤편을 지팡이 하나로 돌아다니는 80살 노인이라면 우리도 공감할 만한 질문입니다. 잠깐만요, 저요? 저요? 여기 모세라는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합리적인 질문입니다. 제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저는 그가 그렇게 물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해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제가 누구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그는 자기 자신, 자기의 연약함과 약함을 알았기에 놀랐습니다. 자신이 잊힌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때는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흔 살 때 모세에게 오셨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마 좀 자만하며 그렇습니다 제가 이 일을 맡을 적임자입니다 하나님 존경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흠이 없으십니다. 저를 고르셨습니다. 제가 바로 이 일을 맡을 사람입니다 라고 했을 것입니다. 마흔 살 때라면 그렇게 반응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집트 사람이 자기 백성 하나를 때리는 것을 보고, 좌우를 살핀 다음 그를 죽입니다. 나중에는 광야에서 그 못된 사람들에게서 이드로의 딸들을 구해줍니다. 젊을 때 그는 구원하는 일에 나섰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늙었습니다. 한때는 힘과 활력과 생기가 있었습니다. 한때는 이집트에 살기까지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누가 내부에서 움직일 우리의 행동요원이 될 수 있을까? 누가 적절한 자리에 있으면서 구원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아, 알겠다. 모세야 벌써 바로왕의 집에 있잖아 참 잘 됐네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40살 모세는 한때 구원을 이루고 체제를 안에서 바꾸기에 적절한 곳에 있었다고 생각할 만합니다.
권력과 젊음과 권위와 힘과 친구들과 그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든 살이 된 모세는 자기가 이 일에 내놓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자기 생각에는 이 일을 맡을 만한 유리한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말도 못합니다 나중에 하나님께 그렇게 말합니다 저는 말도 못합니다 분명 잘못된 사람을 고르셨습니다 저는 늙었습니다. 먼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젊을 때의 칼과 병거는 지팡이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 제게는 지팡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도움이 된다면, 제가 가진 것은 그것뿐입니다 제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그는 낡은 목자의 옷 양을 돌보느라 더러워진 손 등을 내려다봅니다 제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겠습니까? 11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제가 누구입니까? 답은 무엇입니까? 짧게 답하면 이렇습니다. 모세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대단하지 않은 사람을 사용하기 좋아하십니다.
모세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낮아졌습니다. 꺾였습니다. 자기 힘을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은 가장 뜻밖의 사람들을 사용하기 좋아하십니다.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어렸을 때 사무엘이 미래의 왕이 될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새에게 가서 이새야, 아들이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이새는 네, 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골라 보십시오. 아들들이 큰 상자 하나 가득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아들을 고르십시오 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들의 상자를 뒤지지만 적합한 아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잘생기고 힘센 아들들조차 아닙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고르신 사람은 그들이 아닙니다. 마침내 사무엘이 그러면 남은 아들이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이새는 글쎄요 그 애는 잘 모르겠네요.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뒤쪽 선반에 하나 있습니다 들판에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다윗입니다 아마 원치 않으실 겁니다 그래도 데려오겠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물론 바로 그가 그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입니다.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사람을 하나님이 고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봅니다. 예수님은 자, 공적인 사역이 시작되었다. 제자들을 모을 때다 라고 하십니다. 어디서 찾으십니까? 성전에 가십니까? 가장 좋은 종교적 옷을 입은 사람들, 토라의 모든 구절을 인용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것을 다 아는 사람들을 찾으십니까? 그다지 그렇지 않습니다. 물가로 내려가 어부들을 찾으십니다. 어부들 뿐 아니라 세리도 찾으십니다. 가장 위대한 목적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기를 좋아하십니다. 자신이 그저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대단하지 않은 사람을 사용하여 큰 일을 이루기 좋아하십니다.
줄곧 그렇게 하십니다. 이 경우에는 왜 그러십니까? 왜 대단하지 않은 사람을 고르십니까? 왜 모세의 힘이 시작될 때가 아니라 끝에 이르렀을 때 그를 고르십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출애굽기의 다음 여러 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십시오. 머지않아, 앞으로 몇 주 동안 우리는 모세가 이집트로 가서 바로에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곧 이집트 사람들에게 재앙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재앙이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열 번째이자 가장 무서운 재앙에 이를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 하나님이 바로 이런 사람, 이런 사람을 사용하셨다는 사실은 그 일들이 일어난 힘이 모세에게서 나올 수 없었고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왔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바로와 이집트 사람들에게 재앙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누구나 그것이 모세에게 어떤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팡이를 든 그 사람 자신에게 무슨 고유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일어났을 리가 없습니다 이 재앙들 일어나는 이 일들은 분명 하나님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당대 가장 강력한 유대인을 보내셨다면, 당대 가장 강력한 사람을 보내셨다면, 사람들은 혼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 강력한 사람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난다 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팡이를 든 이 약하고 늙은 미디안 목자를 보내셨기에, 그를 보내셨기에, 이 모든 일이 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작정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아무도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하나님께 제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십시오.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가 누구인지는 이 일에서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네가 가서 이 일을 할 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모세야, 네가 누구인지는 지금 맡긴 일에서 중요하지 않다. 나는 돌들이 내 이름을 부르짖게 할 수도 있다.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네가 누구인지는 이 일에서 가장 덜 중요한 부분이다. 네가 바로의 궁정에 가서 설 때 자신감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때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네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이 떨기나무를 태우면서도 소멸시키지 않는 이가 나다. 말로써 온 우주 자체를 지은 이가 나다. 창조된 세계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세우신 내가, 네가 바로에게 갈 때 네 곁에 있을 것이다. 네가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이다. 16세기에 존 녹스라는 종교개혁자가 있었습니다. 장로교인이라면 존 녹스라는 이름을 귀하게 여기실 겁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다수가 된다.
하나님이 모세를 지지하셨다면 아무것도 모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자 3장의 남은 말씀을 보겠습니다. 13절부터 22절까지 한 덩어리로 읽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말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할 때 그들이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또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스스로 있는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인 주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고 대대로 나를 기억하게 할 이름이다.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말하여라.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인 주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분명히 돌보았고, 이집트에서 너희에게 행해진 일을 보았다. 내가 말하기를 이집트에서 받는 고난에서 너희를 데리고 올라가 가나안 사람, 헷 사람, 아모리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게 하겠다 그러면 그들이 네 말을 들을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이집트 왕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인 주님이 우리를 만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을 가서 우리 하나님인 주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나 나는 이집트 왕이 너희를 보내지 않을 것임을 안다. 강한 손으로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손을 뻗어 이집트 가운데서 행할 모든 기적으로 그 땅을 치겠다. 그 뒤에 왕이 너희를 보낼 것이다. 나는 이집트 사람들 앞에서 이 백성이 호의를 얻도록 하겠다. 너희가 나갈 때 빈손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여인들은 이웃, 곧 자기 집 가까이 사는 여인에게 은붙이와 금붙이와 옷을 달라고 하여 너희 아들과 딸에게 입혀라. 그렇게 너희는 이집트 사람들의 재물을 취할 것이다. 앞에서 모세는 제가 누구입니까? 제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13절부터 22절에서는 다른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누구십니까? 누구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물을 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14절에서 하나님은 오직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방식으로 답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신학적 의미가 깊이 담긴 답입니까? 그렇습니다. 모세는 여생을 이 답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보냈을 것입니다. 우리처럼 이해의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머리를 어지럽히는, 신학적으로 깊고 다소 당혹스러운 답입니까? 그렇습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여기 핵 물리학자가 계십니까? 적어도 로켓 과학자 한 분은 계신 줄 압니다.
로켓과학자가 아기에게 양자역학이나 물리학을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고 해봅시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그다지 잘 되지 않을 겁니다.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할 수 있습니다. 몇 시간씩 말할 수 있습니다. 몇 년씩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지식과 이해의 격차가 있으므로, 말하는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차이를 1조 배로 늘려 보십시오. 여기의 문제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누구신지 설명하기 시작하셔도 모세에게는 그 답을 처리할 역량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누구든 비행기에서 만난 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를 해주세요. 어떤 분이십니까 라고 물으면 어떤 답을 얻습니까? 사람들은 저는 톨리도에서 자랐습니다. 밥과 제인의 아들입니다. 치과의사입니다. 변호사입니다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자신 바깥의 사물이나 사람을 가리키면서 자기가 누구인지 설명합니다. 자신의 특성을 그렇게 정의하여 여러분이 자기에 대해 더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이해하도록 외부의 사물과 표지를 가리키며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보다 높으시며 그 모든 것을 초월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된 세계의 사물을 가리켜 자신이나 자신의 이름, 속성, 성품, 본성을 정의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을 것입니다. 대신 가장 옳고 적절한 답을 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오직 자신의 본성에 호소하십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그 어떤 다른 것과의 관계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것을 바탕으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모세의 질문에 하실 수 있는 답은 좁혀집니다. 가장 간단하고 가장 정확하며 충분한 답 비록 복잡하고 당혹스러울지라도 가장 간단한 답은 모세가 실제로 받은 답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자신을 밝히신 뒤 하나님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모세에게 상기시키십니다. 모세야,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어하면 그들에게 기억하게 하여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누구였느냐? 지난 세월에 그 모든 일을 한 이가 누구였느냐? 그 하나님은 누구였느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을 주신 하나님, 이스라엘 사람들의 하나님, 그가 바로 나다. 이 모든 일을 한 이가 나다. 그래서 모세에게 상기시키십니다. 내가 과거에 약속들을 주었고 그 모두를 지켰다. 약속을 주었다. 너희 조상들과 언약을 맺었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해주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처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언젠가 그의 모든 후손이, 그때는 후손이 하나도 없었지만 수백년, 수백년 뒤에 그의 모든 후손이 외국 민족의 압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서 그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씀하셨고, 그 일이 일어날 때 내가 그들과 함께 하겠다 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해방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금이 성취의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과거에 약속한 것들을 알지? 바로 지금이 성취의 때다. 그리고 너는 내가 고른 도구다. 이론상 구원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손가락을 튕기시거나 말씀 한마디를 하시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구원을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몇 주 동안 보겠지만 구원은 즉시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세가 들어가 바로에게 이야기를 전하지만, 바로는 즉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항합니다. 왜입니까? 왜 즉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방금 읽은 19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네가 가서 이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는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가서 하기를 원하지만 미리 알려주겠다. 모세야, 결말을 조금 알려주겠다. 네가 그렇게 할 때 준비하고 있어라. 바로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듣지 않을 것이다. 왜입니까? 분명한 이유는 바로가 죄인이었고 반역자였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자신이 신이라고 여기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대의 모든 바로왕들과 왕들과 지도자들에게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십시오. 그 시대의 왕이나 지도자라면,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이라면,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대했습니까? 신인 것처럼 대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신이라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바로 왕들은 모두 그랬습니다. 자신들이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자신을 신이라고, 신성의 불꽃을 부여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늙은 목자 하나가 와서 다른 어떤 신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한다고 전하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여기는 내 땅이다. 내 관할이다. 다른 어떤 신도 들어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못한다. 바로가 그렇게 반응할 것입니다. 나는 휘둘리지 않겠다. 이봐, 네 신이 누구든 상관없다. 거기에 응답하지 않겠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완고해집니다. 재앙 하나하나를 겪으면서도 마음이 완고해집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시간, 그 지연도 하나님의 계획에 속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닙니다. 지연조차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속합니다. 바로가 더 반역할수록, 다음 몇 장에서 보겠지만, 바로가 더 반역할수록 하나님의 최종 승리는 더욱 영광스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가 더 반역할수록 하나님의 최종 승리는 더욱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마치시면 유대인들도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집트 사람들도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그들의 신보다, 바로보다 더 강하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온 창조의 하나님이 재앙이라는 폭탄을 그들에게 떨어뜨리시고, 재앙에 재앙에 재앙을 더하시고 일을 마치시면,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기뻐할 뿐 아니라 더 빨리 가라고 금까지 줄 것입니다. 방금 읽은 말씀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알려주신 내용입니다. 이 일이 다 끝나고 모든 재앙이 행해지면, 그들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기쁘게 응답할 뿐 아니라 자기 몸에 걸친 금과 물건들까지 줄 것이다. 그렇게 너희가 그들의 재물을 취할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재물을 취할 것이다. 오늘 본문의 끝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런 뜻밖의 반전이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음 주에는 모세가 바로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읽겠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신 것만큼 완고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완고함마저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룰 것입니다.
오늘 아침 말씀을 마치며, 수백 년 뒤 로마서 9장에 기록된 하나님이 바로에게 하신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성경이 바로에게 말한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내가 너를 세웠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내가 너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내 능력을 너에게서 보여주려고.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내가 너를 세웠다. 내 능력을 너에게서 보여주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하려고 그렇게 하였다. 보십시오. 바로는 반역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일어날 줄 아셨습니다. 바로가 하나님께 맞서 싸울 줄 아셨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거룩한 발 아래서 바로를 짓밟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한 가지 생각, 적어도 한 문구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온 땅에서 가장 높은 나무가 베어질 때, 그 나무를 벤 도끼를 감탄하며 바라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가 아무리 강하고 권력과 힘이 있어도 결국 쓰러질 때, 말하자면 그가 쓰러지는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이 그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9장은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내 능력을 너에게서 보여주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하려고,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내가 너를 세웠다. 온 세상이 바로를 무너뜨리신 하나님께 경탄할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모세가 바로를 만나 내 백성을 보내라 라고 선언하는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