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설 · 창세기 · 설교 14
요셉과 채색옷
삶이 무너지는 듯한 순간,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토비 B. 홀트 박사는 창세기 37장을 따라 야곱의 편애, 형제들의 시기와 모의, 구덩이에 던져져 애굽으로 팔려 가는 요셉, 그리고 요셉이 죽었다고 믿으며 애통해하는 야곱을 살펴봅니다.
이 설교는 인간의 죄를 정당화하지 않으면서, 고통스러운 사건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합니다. 기대와 현실이 어긋날 때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과 그분을 신뢰하는 것의 차이를 짚고, 고난 속에서 자기 백성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본문: 창세기 37장
설교자: 토비 B. 홀트 박사
New Geneva Theological Seminary
이 에피소드는 토비 홀트 박사의 영어 설교를 한국어 청취자를 위해 각색한 것으로, 홀트 박사의 승인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음성 역시 홀트 박사의 승인 아래 본인의 목소리를 인공지능(AI)으로 재현한 것이며, 홀트 박사가 한국어로 직접 설교한 실제 녹음이 아닙니다.
챕터
00:00 삶이 무너지는 순간
01:32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02:24 야곱의 편애와 형제들의 미움
04:00 형제들의 시기심
05:28 편애를 되풀이하는 야곱
07:37 요셉의 꿈과 형제들의 분노
10:28 형제들의 모의와 르우벤의 만류
11:50 구덩이에서 애굽으로
15:08 기대와 다른 현실 속 신뢰
16:22 고난과 성품의 변화
17:07 요셉이 죽었다고 믿는 야곱
19:06 모든 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20:04 고난 속에서 묻는 하나님의 선하심
20:57 보이지 않는 섭리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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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 0:00 삶이 무너지는 순간
- 1:33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 2:24 야곱의 편애와 형제들의 미움
- 4:01 형제들의 시기심
- 5:28 편애를 되풀이하는 야곱
- 7:37 요셉의 꿈과 형제들의 분노
- 10:28 형제들의 모의와 르우벤의 만류
- 11:51 구덩이에서 애굽으로
- 15:09 기대와 다른 현실 속 신뢰
- 16:22 고난과 성품의 변화
- 17:07 요셉이 죽었다고 믿는 야곱
- 19:07 모든 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20:04 고난 속에서 묻는 하나님의 선하심
- 20:58 보이지 않는 섭리와 믿음
원고
Holt: 살다 보면 어떤 일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더 못 버티겠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고 적어도 조금씩 나아지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생깁니다. 상실이 찾아오고 상처가 생기고 고난이 닥칩니다. 여러분의 경우가 무엇이든 그 자리에 넣어 보십시오. 머리에 흰머리가 조금이라도 있으시다면 인생에서 그런 일을 한두 번은 보셨을 겁니다. 뒤로 밀려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쓰러진 듯해서 여기서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싶은 일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일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누군가 찾아와 당신의 아들이 당신의 자녀가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라고 전한다면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인생의 황혼기를 바라보던 한 노인이 사랑하는 아들 분명 가장 아끼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잠을 자다가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니라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인생의 참혹한 사건 가운데서도 손꼽힐 일이죠. 그렇다면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에게도 얼마나 큰 충격이 닥칩니까?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앞날이 훌륭하고 영광스러울 것처럼 보이는 꿈들을 꾸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구덩이에 던져집니다. 먼 곳의 원수들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 친족, 자기 형제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집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그를 팔아버립니다. 동네에 어떤 집에 파는 것도 아니고 애굽으로 팔아버립니다. 여기에 참혹한 사건이 몇 가지나 겹쳐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이들은 믿음의 족장들로 이어지는 가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있고 이삭이 있고 야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당시 온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좀 더 세심하게 돌보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겠죠 여러분이 구덩이에 빠진 요셉이라면 분명히 그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좀 더 세심하게 돌보셔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 구덩이 속에 뒤로 넘어진 채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창세기 37장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건들이 하나하나 펼쳐지는 가운데 그 모든 일에 남겨진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 1절부터 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 구절들을 따라가 보지요. 1절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 곧 가나안 땅에 살았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17살이었고 형제들과 함께 양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아내들인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에게는 여러 아내가 있었고 첩들도 있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던 중 요셉이 형제들의 나쁜 행실을 아버지에게 알렸습니다. 그저 형제들을 일러 바쳤을 수도 있습니다. 고자질쟁이였을 수도 있죠. 어쩌면 그들이 실제로 한 일을 보고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3절을 보면 이스라엘, 곧 야곱은 요셉을 다른 모든 자녀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노년에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여러 색깔의 옷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했습니다. 요셉에게 다정한 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자, 여러 주 전부터 창세기를 함께 공부해 오셨다면 한 가지를 눈여겨 보셨을 겁니다. 지금까지 창세기의 형제들, 특히 형제가 등장할 때마다 그들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좋지 않았습니다. 땅 위의 첫 형제는 누구였습니까? 가인과 아벨입니다. 두 사람 사이는 어떻게 되었지요? 좋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몹시 시기한 나머지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뒤에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있고 야곱과 에서도 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그 두 사람 사이의 적대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본문에는 요셉을 미워하는 그의 형제 10명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미워하다 라는 말이 3번이나 나옵니다.
그들은 정말로 자기 형제를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그 미움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가인이 아벨에게 품었던 미움, 야곱과 에서 사이의 미움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거듭해서 나타나는 주된 뿌리는 시기심입니다. 다른 문제도 있었겠죠. 온갖 일로 다투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의 머리를 깨트리려고 돌을 집어들게 한 주된 이유, 여기서 형제를 노예로 팔아버리게 한 주된 이유는 시기심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그를 시기했습니다. 1절부터 4절에서 방금 보았지요? 2절에서는 요셉이 형제들에 관해 아버지에게 일렀습니다. 3절에서는 아버지가 요셉에게만 옷을 주었습니다. 아마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다른 재물과 선물도 있었겠지요. 어느 날 갑자기 선물 하나만 주고 끝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얼마 동안 계속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3절에서는 특별한 옷을 주었고, 4절은 아버지가 다른 자녀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여러분이 나머지 형제들이라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렇다고 그들의 미움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저지른 짓은 끔찍하니 더더욱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마음에 입은 상처만큼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다른 아들들보다, 어쩌면 그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요셉을 더 사랑한 듯 했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는 이해할 수 있죠. 그리고 조금 슬픈 것은 지난 몇 주 동안 창세기를 공부한 우리라면 야곱이 이미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곱과 에서의 관계를 기억하십니까? 아주 나빴습니다. 그 관계가 그렇게 나빠진 주요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는 야곱의 아버지 이삭이 에서를 사랑한 만큼 야곱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앞 세대에도 노골적인 편애가 있었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더 좋아했고 더 사랑했습니다 축복도 에서에게 주고 싶어했습니다 에서와 맺은 관계는 야곱과 맺은 관계와 달랐습니다 그러니 야곱이 이렇게 말하리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자라면서 그게 정말 싫었어 아버지는 내게는 함께 해주지 않으면서 형에게는 늘 함께 해주셨지 나를 대하시는 모습과 늘 형을 좋게 보시는 모습이 싫었어 나는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을 것 같죠? 하지만 아닙니다 야곱은 분명하게 편애합니다 그저 속내를 짐작해야 할 정도의 편애도 아닙니다 아버지가 저 형제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시는 것 같아 하고 형제들이 가끔 눈치채는 정도도 아닙니다 그는 형제들 뿐 아니라 온 세상이 알도록 드러냅니다 이 아이가 내가 가장 아끼는 내 최고의 아들이다 내가 여러 색깔의 옷을 만들어 주겠다 화려하고 값진 옷을 입고 돌아다니게 할 테니 모두가 그 옷을 보고 내가 요셉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것이다 이런 모습입니다 옷에 최고의 아들 이라고 써서 입힌 것과도 같습니다 그가 그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면 그 옷이 사실상 최고의 아들 나머지는 모두 낙오자 라고 말하는 셈이죠 형제들에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들이 멀리서 그 옷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4절은 그들이 요셉을 미워했다고 말합니다. 그 미움에는 요셉 자신에게서 비롯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에게도 문제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사실 앞으로 그가 꿈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교만한 면이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상황을 더 나쁘게 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자녀를 공평하게 기르고 대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랑을 나눌 때 어느 아이도 유독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지극히 높으신 왕의 자녀라면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한없이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무한하여 헤아릴 수 없습니다 자 이제 다음을 보겠습니다 5절부터 8절을 보겠습니다 요셉이 꿈을 꿉니다 그 옷을 입고 동네를 다니는데 그치지 않고 이제 꿈까지 꾸고 형제들에게 들려줍니다 5절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형제들에게 말하자 그들은 그를 더욱 미워했습니다 요셉이 말합니다 제발 내가 꾼 꿈을 들어보세요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어요 형제들에게 하는 말이죠 그들이 자주 하던 일입니다 그런데 내 단이 일어나 똑바로 서고 형들의 단이 둘러서더니 내 단에 절했어요 형제들이 대답합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 위에 왕이 되겠다는 것이냐?
네가 우리를 다스리겠다는 것이냐? 어린 동생인 네가 말이냐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꿈과 말을 듣고 더욱 미워했습니다 전에도 미워했지만 이제는 훨씬 더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자 5절부터 8절에서 요셉은 두 꿈 중 첫 번째 꿈을 꿉니다. 첫 번째 꿈이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꿈으로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할지 선택해야 할 겁니다. 요셉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좋아 형제들에게 이 꿈을 들려주자. 널리 알려야지. 본문을 읽는 사람들과 많은 주석가는 이것이 대단한 교만과 자만의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꿈의 뜻을 알아차리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꿈이나 환상 가운데는 뜻을 알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다니엘서를 펼쳐보십시오 다니엘이 본 여러 환상과 꿈의 의미를 하나하나 알아내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꿈은 아주 쉽습니다 요셉의 입에서 말이 나오자마자 형제들은 한결같이 뜻을 압니다 그래서 즉시 꿈의 내용에 따져 묻습니다 첫 꿈에서는 형제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단 앞에 절합니다 다음에 꾸는 둘째 꿈에는 하늘의 별들이 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셉이 형제들 뿐 아니라 다른 이들보다 높아지는 듯한 꿈입니다 첫 꿈에 이 둘째 꿈까지 더해지자 형제들은 더욱 불쾌해합니다 조금 전에 읽었듯이 아버지까지도 불쾌해하죠 아버지는 요셉을 꾸짖으며 무슨 소리냐 네 어머니와 나도 네게 절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어린 요셉의 교만과 자만이 보입니다 요셉은 겨우 17살입니다 여러분도 한때 17살이었고 그 나이에 교만과 자만이 있었을 겁니다 요셉이 우리보다 더했는지 덜했는지는 모르지만 17이라면 한껏 자신감이 넘칠 때이죠 요셉도 그랬습니다 형제들에게 내가 여기서 우두머리가 될 거예요 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아버지조차 왜 그런 말을 하느냐 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나중에 이 꿈들을 마음에 두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가문을 통해 특별한 일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알지만 그 일이 정확히 무엇일지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요셉을 꾸짖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이제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마지막 한 방울이 더해진 것 같습니다. 저 녀석이 꿈 이야기를 한 번만 더 하면 저 옷을 입고 다니는 걸 한 번만 더 보면 좋게 끝나지는 않을 거야. 8절에 이를 무렵 분노가 끓어오를 대로 끓어올랐습니다. 자, 이제 앞부분을 건너뛰겠습니다. 18절부터 21절을 보겠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린 요셉의 교만에 맞선다며 형제들이 어떤 음모를 꾸미는지 보겠습니다. 그들이 멀리서 요셉을 보고 그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서로 말합니다. 저기 꿈꾸는 자가 온다. 자, 그를 죽여 구덩이에 던지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 들으셨습니까? 그러면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맏형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하려 합니다. 죽이지는 말자, 얘들아 그러지는 말자. 르우벤은 피를 흘리지 말고 광야의 이 구덩이에 던지자, 손대지는 말자 라고 합니다. 나중에 형제들의 손에서 요셉을 건져 아버지에게 돌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적어도 한 사람은 얘들아 그러지 말자 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형제가 뒤늦게 말리고 있을 뿐 18절부터 21절의 다른 형제들은 모두 가담하려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던 그 죄가 돌아와 이제는 한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 형제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것은 형제를 죽이는 형제 살해의 모습입니다 다행히 맏형 르우벤이 그들을 설득해 죽이는 대신 구덩이에 내버려 두게 합니다 그것이 더 낫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직접 죽여 그 피의 죄를 지느니 구덩이에 던져두자.
무슨 짐승이 해칠지도 모르지만 직접 죽이지는 말자. 겉으로는 그런 제안을 하면서도 르우벤은 요셉을 구해 아버지에게 데려갈 생각이었습니다. 이제 형제들은 잠시 옆에 두고 요셉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요셉의 입장이 되어 보십시오. 그 구덩이 속에서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날이 요셉 인생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형제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졌으니까요 그 전까지 요셉은 그 옷을 입고 돌아다녔습니다 장래에 대한 큰 꿈도 꾸고 있었죠 하나님께서 자신의 미래에 관해 무엇인가 말씀하시는 것 같았고 앞날이 너무 밝아서 선글라스라도 써야 할 판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니 적어도 화려한 옷은 입고 있었죠 앞날이 참 유망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이 일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요셉을 보내 그들을 살펴보게 합니다 요셉은 처음에 세겜으로 갔다가 낯선 사람을 만납니다 이것이 섭리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죠 형제들은 거기 없고 아마 도단으로 갔을 테니 그리 가보면 만날 거라고요 그래서 요셉은 도단으로 갑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벌판에서 만난 한 사람의 말에 이 이야기 전체가 걸려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여기 말고 저쪽에서 형제들을 찾으라는 그 말 말입니다 이 이야기 곳곳에 하나님의 손길이 보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다가갑니다 18절을 보면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형제들은 그를 알아봅니다 그 옷을 보는 순간 그를 보는 순간 자기 형제를 보는 순간 이제 끝장을 보자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8절에서 그를 죽일 음모를 꾸밉니다 저 꿈꾸는 자가 온다 그를 죽여 구덩이에 던지고 맹수가 잡아먹었다고 말하자는 것입니다 요셉은 아마 형들 잘 지냈어요?
하고 다가갔겠죠 그 순간 형제들이 달려들어 그를 붙잡고 구덩이에 던집니다 인생 최악의 날이었을 겁니다 그곳에 앉아 이 모든 일을 겪으며 요셉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형들이 나를 미워하고 죽이려 하더니 구덩이에까지 던졌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요셉에게 알려줄 수 있다면 곧 상황은 훨씬 더 나빠질 참이었습니다 바로 가까운 장래에 친형제들이 그를 노예상들에게 실제로 팔아버립니다 길 아래 이웃집 농장에 가서 일하게 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말하자면 하나님의 땅에서 끌려 나와 이방인들이 사는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구덩이 속의 요셉은 노예상들과 애굽으로 가는 길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애굽에 도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그리 오래지 않아 보디발의 아내를 성폭행했다는 거짓 고발을 받게 됩니다.
누명을 쓰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도 끝이 아닙니다. 그 거짓 고발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보통 감옥도 아닙니다. 정치범들이 갇히고 거기에 들어가면 많은 이가 죽는 그런 감옥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 구덩이도 쇠사슬도 팔려가는 일도 애굽으로 향하는 대상 행렬도 참혹했을 겁니다. 그런데 상황은 계속 나빠졌습니다. 한동안 하루하루가 요셉 인생에서 가장 나쁜 날이었을 것입니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 그 꿈들 기억하시죠? 제게 그 꿈들을 주셨잖아요. 형제들이 제게 절하고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하셨잖아요. 하나님도 기억하시죠? 저도 기억합니다. 그런데 애굽의 이 감옥은 그 꿈과 전혀 다릅니다. 제가 하나님 말씀을 잘못 들은 겁니까? 아니면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신 겁니까? 이제 저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겁니까? 물론 이것은 추측입니다.
요셉 마음에 어떤 생각들이 지나갔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요셉이 실제로 겪는 일은 그가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멈춰보겠습니다. 믿는 여러분도 그런 일을 겪어보셨습니까? 인생의 한 시기, 혹은 앞으로 남은 세월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 기대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마땅히 이렇게 하셔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실 듯 보였고, 또 그렇게 해주시기를 기도했기에 그런 기대를 품었던 것 말입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갑자기 벌어집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오던 길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고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깨뜨려 놓습니다 그때 하나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하고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반드시 옳은 반응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 순간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꼭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아주 큰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파하는 지점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저는 어떤 결과를 바라며 이 일을 주님 손에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없어졌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묻게 되는 것이죠. 요셉의 마음속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자만과 교만, 그 밖의 것들을 벗어버리도록 어떤 고난을 겪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의 성품을 바꾸는 경험이 필요했고, 실제로 그의 성품은 변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서 하신 일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이 그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마지막 구절들을 보면서 섭리를 조금 더 이야기해봅시다. 29절부터 34절로 넘어가겠습니다. 창세기 37장의 이 시점에서 노예상들이 이미 형제들에게서 요셉을 사갔습니다.
이야기는 잠시 요셉에게서 형제들 쪽으로 돌아갑니다. 특히 그들이 아버지에게 전하는 소식으로 말입니다. 그 아버지도 이제 인생 최악의 날을 맞게 됩니다. 자 29절부터 34절입니다. 르우벤이 구덩이로 돌아왔는데 요셉이 거기에 없는 것을 보고 자기 옷을 찢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돌아와 말합니다. 그 아이가 없어졌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느냐. 르우벤은 맏아들입니다. 형제들을 돌보아야 할 책임이 어느 정도 있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아이가 사라졌으니 이제 나는 어쩌면 좋으냐고요. 31절을 보면 형제들은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어린 염소를 죽이고 그 피에 옷을 적십니다. 그런 다음 그 여러 색깔의 옷을 아버지에게 가져가 말합니다. 이 옷을 찾았습니다. 아버지 아들의 옷인지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잔인합니까? 아버지, 피 묻은 이 화려한 옷을 찾았어요.
이게 요셉 것인지 아버지가 좀 봐주시겠어요? 하고 묻는 겁니다. 그들이 들어가기 전에 아마 누가 무슨 말을 할지 연습했을 겁니다. 그러자 야곱이 그 옷을 알아봅니다. 내 아들의 옷이다. 맹수가 그를 잡아먹었구나. 요셉이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당시에는 맹수에게 사람이 잡아먹히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이 야곱에게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37장의 시대에 살아가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였지요.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은 기도도 했고 믿음도 있었습니다. 요셉에게서 꿈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고 말합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최악의 결론을 내립니다. 그에게 주어진 증거는 단 하나, 그것도 조작된 증거인데 말입니다. 이제 끝났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죠. 34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야곱이 자기 옷을 찢고 허리에 굵은 베를 두르고 여러 날 동안 아들을 위하여 슬퍼했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에게 한 일도 잔인하지만 방금 아버지에게 한 일은 그보다 더 잔인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순간, 족장 시대에 살던 요셉과 야곱의 삶과 믿음을 한 장면으로 멈춰놓고 본다면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상황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럴만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라는 것을 알 만큼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권자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고 할 때 어떤 일들만 다스리고 나머지는 어떻게 되나 지켜보다가 가끔 소매를 걷어붙이고 개입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움직이거나 존재하는 분자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우리는 일이 잘 될 때는 이것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섭리를 말할 때도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놀랍고 좋은 일들을 이루시도록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말합니다.
내 삶에 좋은 일이 생기면 그리스도인들은 아, 이게 섭리지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라고 말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런데 끔찍한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 아, 이것도 섭리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저는 거의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끝에서 시작까지 정하시고 시작에서 끝까지 정하십니다 하나님은 몇몇 일만이 아니라 모든 일을 다스리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 중에는 우리가 겪기에 너무나 끔찍하고 힘든 일도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갈라지는 듯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말하면서도 어떤 일이 벌어지면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선하신 데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다스리시고 선하신데 이런 일이? 선하시고 다스리시는데 왜 이런 일이? 우리는 이 사실들을 함께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바로 그 순간에 주님은 선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두 사람이 있다면 요셉과 야곱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들에서 우리는 그 뒤에 요셉의 삶에 어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지 보게 됩니다. 저는 지금 당장 이야기의 끝으로 건너뛰어 모두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간단히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인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장에는 하나님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보아도 하나님께서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사용하여 선하고 놀라운 결말을 이루시며 사건의 방향을 정하시는 손길을 이토록 뚜렷하게 보여주는 장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몇 장만 더 가면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직접 정하신 일임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과 족장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구원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영혼의 구원과 마음이 완고한 형제들의 성화 형제들 앞에서 교만했던 한 형제의 성화 그리고 잠시 신뢰를 잃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라고 말했던 노인의 성화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이 사람들의 성품에도 무언가를 이루셔서 이야기의 끝이 시작보다 더 나아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족장들의 이야기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살펴보았고 이제 그 아들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시작이 그리 좋지 않은 경우도 많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택하시고 너희는 내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온갖 고난 속에서 그들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 모든 어려움을 지나 선하고 놀라운 결말에 이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자신에게서 한 발 벗어나 만피트 상공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볼 수 있었다면 다른 길을 바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요셉이 나중에 하게 될 말도 바로 그런 뜻입니다 형님들은 저를 해하려는 뜻으로 행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선을 이루려는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무엇을 겪고 있든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지금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언젠가 갖게 될 시야를 우리는 아직 갖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 믿음이 작용합니다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마음에 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선하시고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나의 고난과 상실이 헛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지금도 내가 온전히 이해하거나 좋아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것을 사용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사용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품습니다. 믿음은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일을 좋아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다른 길이었기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