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설 · 창세기 · 설교 11
축복과 배신
하나님은 왜 아버지를 속인 야곱을 사랑하셨을까요? 창세기 27장에서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을 주려 하고, 리브가와 야곱은 속임수로 그 축복을 얻으려 합니다. 홀트 박사는 이 가정의 죄를 감추지 않으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약속이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서도 선한 뜻을 이루신다고 해서 죄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순종은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이 설교는 깨어진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살피며, 그분의 사랑을 우리 공로로 얻을 수 없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복음으로 이어집니다.
본문: 창세기 27장
이 에피소드는 토비 홀트 박사의 영어 설교를 한국어 청취자를 위해 각색한 것으로, 홀트 박사의 승인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음성 역시 홀트 박사의 승인 아래 본인의 목소리를 인공지능(AI)으로 재현한 것이며, 홀트 박사가 한국어로 직접 설교한 실제 녹음이 아닙니다.
챕터
00:00 죄 가운데서도 야곱을 사랑하신 하나님
00:27 언약의 맥락에서 축복이 갖는 의미
01:04 아브라함의 언약과 이어지는 약속
03:29 하나님의 정하신 길을 바꾸려는 이삭
03:52 어린 자가 형을 다스리리라
04:45 축복을 가로채려는 계획: 창세기 27:1–10
07:38 이삭은 왜 에서를 더 좋아했는가
10:54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다: 창세기 27:18–24
13:00 족장의 가정에 드러난 죄
14:47 깨어진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16:12 주어진 축복과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
18:51 하나님의 뜻과 씨름한 야곱의 삶
20:37 성도의 견인: 하나님의 사랑을 잃지 않는다
21:1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반역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다른 언어로 듣기
챕터
- 0:00 죄 가운데서도 야곱을 사랑하신 하나님
- 0:28 언약의 맥락에서 축복이 갖는 의미
- 1:04 아브라함의 언약과 이어지는 약속
- 3:30 하나님의 정하신 길을 바꾸려는 이삭
- 3:52 어린 자가 형을 다스리리라
- 4:46 축복을 가로채려는 계획: 창세기 27:1–10
- 7:39 이삭은 왜 에서를 더 좋아했는가
- 10:55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다: 창세기 27:18–24
- 13:01 족장의 가정에 드러난 죄
- 14:47 깨어진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 16:12 주어진 축복과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
- 18:52 하나님의 뜻과 씨름한 야곱의 삶
- 20:38 성도의 견인: 하나님의 사랑을 잃지 않는다
- 21:1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반역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원고
Holt: 성경의 두 곳에서 하나님은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창세기 27장을 보면 둘 중에 오히려 야곱이 더 큰 죄를 짓는 것처럼 보입니다. 먼저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형에게 돌아갈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야곱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또 하나님은 이런 죄를 지은 야곱을 어떻게 사랑하실 수 있었을까요? 오늘 창세기 말씀에서 살펴볼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서는 뜻밖의 한 단어를 놓고 다툼이 벌어집니다. 그 단어가 바로 축복입니다. 잠깐 여쭙겠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누가 여러분을 축복해 준 적이 있습니까? 축복해 준 사람이 있을 겁니다. 언제 그랬을까요? 아마 여러분이 재채기를 했을 때겠죠. 21세기 북미 복음주의 문화의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자주 듣는 축복의 말이 재채기 뒤에 건네는 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본문도 현대 북미 복음주의자의 눈으로 읽으며 묻습니다 축복이 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왜 서로 차지하려고 합니까? 왜 축복 때문에 이렇게까지 다툽니까? 이 질문에 답하고 본문을 이해하려면 당시 축복이 어떤 의미였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 맥락에서 축복은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바라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창세기 12장과 15장 그리고 그 뒤의 말씀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온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드신 세상을 바라보시고 온 땅의 모든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이름이 무엇이었지요? 아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선택받을 만한 특별한 이유를 내게 보여준 것은 아니다. 네가 이것을 벌어들인 것도 아니고 받을 자격을 갖춘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온 세상의 모든 사람 가운데 너에게 약속을 주겠다. 그 약속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아브라함도 늙었고 그의 아내도 늙었지만 그들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입니다.
그 아들에게도 자녀가 생기고 손자, 손녀가 생길 것입니다. 마침내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했던 그 가정에서 하늘의 별처럼, 발밑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이 나올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약속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가문에 크고 좋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자손이 살 그곳을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이라 부릅니다. 당시에는 가나안 땅이라고 불렀지요.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셋째, 아브라함의 자손만 복을 받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네게서 한 민족을 이루겠다. 지금은 늙었고 자녀도 없지만 네 가문에서 큰 민족이 나올 것이다. 그 백성은 복을 받고 내가 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 가운데 거하며 내 율법을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온 세상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받은 그 약속이 그의 후손을 통해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이후의 말씀에서 보았듯이 아브라함은 큰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번 죄를 지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도 여러분이나 저와 다르지 않은 혈육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 잘못된 일을 하려는 성향과 싸워야 했습니다. 큰 믿음이 있었지만 죄인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아브라함을 공부하며 보았듯 그의 아들에게도 같은 일이 적용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은 늙었습니다. 이삭 역시 믿음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에게 주시고 자신에게 이어주신 복이 자기 아들에게도 그 다음 세대에도 계속 이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삭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 곧 이 복이 후손에게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뒤집으려 합니다. 이삭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이름이 무엇이었지요? 야곱과 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이는 누구입니까?
아무도 에서라고 대답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고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했던 터라 임신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하나가 아니라 둘, 쌍둥이라는 겁니다. 그 태중에서부터 다툼이 벌어질 것이고 두 아이가 태어나면 동생이 형을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리브가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처음 주시고 이삭에게 이어주신 약속이 이제 자기 아들 야곱을 통해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이삭은 다른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도 모릅니다. 야곱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죠. 어쨌든 이삭은 자신에게 전해진 축복과 약속, 언약의 계승을 에서에게 주려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는 반대로 말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둘을 비교하면 에서는 분명 더 부적절한 선택입니다.
이제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족의 갈등을 보겠습니다. 1절부터 10절까지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오늘 이 긴 본문을 전부 살피지는 못하지만 몇 군데를 골라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보겠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되자 맏아들 에서를 불러, 내 아들아! 하고 말합니다. 벌써 여기서 이삭의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봅니다.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다고 분명 이삭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야곱보다 에서를 더 좋아했든지 적어도 야곱을 에서만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늙었고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 같으니 집안일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에서를 부릅니다. “어서 오너라, 내 아들아.” 1절에서 이삭이 에서를 부르자 에서가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죠. 그러자 이삭이 말합니다. “나는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네 사냥 도구인 화살통과 활을 챙겨 들로 나가 사냥해오너라.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면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너를 축복하겠다.” 그런데 리브가가 듣고 있었습니다. 장막 안이니 듣기가 그리 어렵지도 않았겠지요. 5절에서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듣습니다. 에서는 사냥감을 잡으러 들로 나갑니다. 그러자 6절에서 리브가가 아들 야곱에게 말합니다. 네 아버지가 형 에서에게 사냥감을 가져와 별미를 만들면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축복해 주겠다고 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 그러니 내 아들아 이제 내 말을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양떼 가운데서 좋은 새끼 염소 두 마리를 가져오너라. 내가 네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겠다. 리브가는 오랫동안 이삭과 살아왔으니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았을 겁니다. 에서가 사냥하는 동안 빨리 음식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지요. 10절입니다.
“네가 그것을 아버지에게 가져가 먹게 하여라. 그러면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가 너를 축복하실 것이다.” 여기서 잠깐 멈추겠습니다. 1절부터 10절을 보면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죽음이 가까웠다고 느낍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지요. 이삭과 또 누구였습니까? 이스마엘입니다. 언약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삭도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그날이 가까운 듯하다. 눈도 보이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며 집안일을 정리하려 합니다. 이삭은 이 문제를 얼마 동안 생각해 왔을 것입니다. 때가 오면 누구를 축복할 것인가. 이제 그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정하셨는지 알면서도 이삭은 그것을 따르지 않으려 합니다. 에서야 이리 오너라. 배가 고프구나. 네가 잘 만드는 그 별미를 만들어 오너라. 지난주에도 보았지만 이런 죄의 이야기에서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흥미롭습니다.
지난주에는 맛있는 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의 권리가 빼앗겼습니다. 이번에는 이삭이 배가 고파 에서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오라고 합니다. 돌아오면 축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왜 에서를 더 좋아했을까요? 사실 우리는 모릅니다. 에서가 맛있는 음식을 잘 만들었으니 배고픈 아버지에게는 그것도 이유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에서가 이 선택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증거는 많았습니다. 지난주에 보았듯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형제에게 넘기면서도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겁니다 죽 한 그릇과 장자의 권리를 바꿀 만큼 소홀히 여겼습니다 이삭은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어야 합니다 장자의 권리를 업신여기고 죽과 바꾼 이 아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다음 세대로 이어갈 사람이 맞는가 그 사실만으로도 경고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바로 앞장인 창세기 26장 끝을 보십시오.
에서가 마흔살에 헷사람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사람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았고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에게 근심이 되었다고 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죽과 바꾼 데다 헷 족속의 여인 둘과 결혼했습니다. 성경은 헷 족속을 본받을 만한 경건하고 도덕적인 백성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방신을 섬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은 그 결혼이 이삭과 리브가에게 큰 근심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에서가 장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긴 일에 이어 이것이 이삭에게 또 하나의 경고가 되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왜 이삭은 에서가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모릅니다. 당시 문화에서는 맏아들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왕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자주 택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문화에서는 먼저 태어난 아들이 쌍둥이 사이에 고작 몇 초 차이라 해도 장자의 권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에게 주려 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에서는 남자다운 사냥꾼이었습니다. 오래전 말보로 광고에 나오던 거친 남자를 떠올려 보십시오. 에서는 그보다 10배는 더 그랬을 겁니다. 반면 야곱은 장막에 머물렀고, 지난주에 읽었듯 피부도 매끈했습니다. 털이 많고 거친 사냥꾼은 아니었죠. 어떤 이유에서든 이삭은 반대되는 증거들을 두고도 그런 에서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갈 사람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하지만 이삭이 야곱을 선택하지 않으려 한 이유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야곱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는 사람을 속이고 제 잇속을 챙겼습니다. 초기 이야기에서 야곱이 하는 일은 거의 모두 잘못되어 보입니다. 잠시 후 보겠지만 그는 아버지를 속이려고 털가죽까지 두르고 아버지 얼굴을 마주하고도 거짓말합니다. 이삭이 이전에도 야곱의 이런 행동을 겪었을까요?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발 뒤꿈치를 잡는다는 말과 관련이 있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 형의 발 뒤꿈치를 붙잡았고 그래서 그런 이름을 얻었습니다. 칭찬의 의미는 아니었죠.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말하자면 그는 계속 남의 발 뒤꿈치를 붙잡았습니다. 형을 속였고 아버지에게 거짓말했습니다. 어쩌면 이삭은 에서의 잘못을 알면서도 다른 아들은 더 못된 녀석 아닌가 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확한 이유를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삭이 하나님의 계획을 뒤집으려 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되는지 보겠습니다. 창세기 27장 18절부터 24절입니다. 이야기는 조금 앞으로 넘어갑니다. 이미 속일 준비를 마친 야곱이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이삭이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라고 묻습니다. 목소리를 듣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일지 모릅니다.
야곱은 저는 맏아들 에서입니다. 아버지께서 시키신 대로 했습니다. 일어나 앉으셔서 제가 잡은 사냥감으로 만든 음식을 드시고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라고 대답합니다. 20절에서 이삭이 묻습니다. 내 아들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잡았느냐? 사냥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돌아왔으니 의아했던 겁니다. 그러자 야곱은 또 거짓말합니다.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제게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까지 자기 거짓말에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사냥감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빨리 돌아왔다고 하는 겁니다. 이삭은 아직 완전히 믿지 못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다른 방법으로 확인하려는 듯합니다. 21절에서 가까이 오너라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인지 만져보겠다 라고 합니다 야곱이 다가가자 이삭은 그를 만지고 말합니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구나 에서처럼 손이 털로 덮여 있으니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축복하려 합니다 그런데 다시 묻습니다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
몇 번이나 확인하는 겁니다 그때 야곱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고 네 맞습니다 라고 거짓말합니다 여기까지 보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 증조 부모님이 살아 계셨습니다. 낮에 할머니는 종종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죠. 무엇을 보셨을까요? 연속극입니다. 영어로는 소프 오페라라고 합니다. 어릴 때는 그 이름이 이상했습니다. 비누도 없고 오페라도 없는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몰랐죠. 하지만 내용은 알았습니다. 어두운 방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앉아있고 이런저런 갈등이 터지고 결정적인 말을 할 때마다 음악이 확 올라옵니다. 오늘 본문도 연속극의 줄거리처럼 보입니다. 구약에서 이만큼 죄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장면도 드뭅니다. 물론 다른 예도 있겠지만 이 장면은 손꼽을 만합니다. 한 족장이 다른 족장, 자기 아버지에게 하는 일을 보십시오. 놀라울 따름입니다. 18절부터 24절에는 이 가족 안에서 세 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첫째 이삭이 하나님의 선택을 거스릅니다.
모든 문제의 출발점입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신 아들을 내가 택하겠다 라고 결심하는 순간 죄의 연쇄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이유와 뜻이 있지만 자신이 두 아들을 더 가까이에서 보았으니 아버지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삭이 처음에 한 선택이 뒤따르는 죄의 출발점이 됩니다. 둘째 리브가가 그 말을 엿듣고 어떻게든 막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편을 속일 계략을 꾸밉니다 하나님께서 그 결과를 사용하신다고 해서 계략이 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눈이 어두운 저 노인을 속이자 내가 음식을 만들면 무엇을 먹는지 모를 거야 너는 털가죽을 두르고 들어가라 리브가도 이 죄에 가담합니다 셋째, 야곱이 아버지를 마주보고 거짓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거듭 명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형의 축복을 빼앗으려고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얼굴 앞에서 거짓말합니다. 부모 공경을 어기는 일 가운데서도 심각한 일이죠.
이 장면에는 온갖 죄가 드러납니다. 제가 이 죄들을 강조하는 이유는 죄를 지은 가정이 누구의 가정인지 놀랍기 때문입니다. 바로 족장들의 가정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사람 가운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손을 들지 않으셔도 됩니다. 많이 있을 겁니다. 여러 세기 동안 부모들은 아이가 성경에 나오는 이들처럼 믿음에 충실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그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리브가 같은 여성의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리브가를 사랑하셨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큰 죄를 짓습니다. 여러분이 공동체나 교회 또는 자신의 가정에서 깨어진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저 사람이 저 가정이 저 교회가 그런 일을 하고도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겠는가 내게까지 그런 일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쓰시겠는가 그러나 깨어진 사람과 가정과 교회를 하나님께서 쓰지 않으신다면 도대체 누구를 쓰시겠습니까 남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높이 존경하는 성경의 족장들조차 깊이 깨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때로 우리는 자기 죄와 문제, 배우자의 문제,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와 나라의 문제를 보며 문제가 있으니 전부 버리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깨어진 사람들을 통해 선한 목적을 이루십니다. 심지어 그들의 죄까지도 자신의 계획 안에서 사용하십니다. 아담 때부터 사람들의 죄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계획 가운데 그 죄도 다루셨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성공할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나 가정이나 공동체를 통해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렇습니다 한 가정이 이보다 더 심하게 깨어지기도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 가정 안에서 그들을 통해 일하셨다면 여러분과 제가 겪는 깨어짐 가운데서도 일하실 수 있습니다 자 이 속임수가 성공하는지 보겠습니다. 오늘 아침 마지막으로 살펴볼 말씀 25절부터 29절입니다.
속임수가 성공하는지 봅시다. 결과는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25절부터 29절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겠습니다. 이삭이 말합니다. “음식을 내 앞으로 가져오너라. 네가 잡아온 것을 먹고 너를 축복하겠다.” 물론 이삭은 앞에 있는 아들이 에서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음식을 가져오자 이삭이 먹고 포도주를 가져오자 마십니다. 그 다음 이삭이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을 맞추어라”라고 말합니다. 야곱이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자 이삭은 그의 옷 냄새를 맡습니다. 또 한 번 확인하는 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 아들의 냄새가 여호와께서 복 주신 들의 냄새 같구나.” 야곱이 에서의 옷을 입고 있어서 에서처럼 냄새가 났던 겁니다. 28절에서 이제 그 큰 축복이 선포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한다” 이삭은 창조세계의 풍요가 아들에게 주어지기를 구합니다.
29절도 보십시오. “백성들이 너를 섬기고 나라들이 네게 굴복하기를 원한다.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기를 원한다.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한다.” 여러분이 차를 몰고 미국의 10번 주간 고속도로를 달린다고 해봅시다. 갑자기 바로 앞 도로가 꺼져 큰 구멍이 생깁니다. 그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원래 세웠던 계획대로 계속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제때 멈출 수 있다 해도 그 길은 막혔고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다릅니다. 자연에도 사람의 마음에도 하나님의 길을 막을 그런 구멍은 없습니다. 사람의 죄도 의롭거나 악한 행위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단 한순간도 멈추거나 방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도 싫어하는 일도 처음부터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는 뜻밖의 구멍이 생겨 하나님께서 급히 피해가셔야 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 본문을 보십시오 온갖 속임수와 죄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여기서 누가 축복을 받습니까?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야곱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사람은 누구입니까? 야곱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아들이 실제로 복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삭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에 따랐다면 이 가족에게 훨씬 낫고 쉬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으니 야곱을 축복하겠다. 에서야, 네게는 다른 방식으로 복을 빌겠다.” 그렇게 했다면 더 의롭지 않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은 좌절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관련된 사람들의 죄 가운데서도 선한 결과를 이루셨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여러분과 저에게 적용하며 마치겠습니다. 앞으로 야곱의 삶을 공부하면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아십니까? 다음 주에는 야곱의 사다리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늘까지 닿은 사다리를 꿈에서 본 일을 기억하십니까? 야곱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끊임없이 씨름한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원하시는 것과 씨름하고, 옳고 그름을 두고 씨름하고, 자기 마음의 죄와 씨름하고, 남의 발뒤꿈치를 붙잡으려는 성향과 씨름했습니다. 야곱은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반항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길을 자주 좇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죄를 지을 때에도 하나님의 결정과 약속이 한순간이라도 어긋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야곱의 불순종이 그에게 아무 고통도 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가며 그는 여러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반항하는 야곱에게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가 반항해도 너를 거룩하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야곱은 스스로 고단한 길을 택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어려운 일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라고 하시는지 알고도 다른 길을 택한 적이 얼마나 있습니까?
성경을 펼치고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라고 알면서도 나는 다르게 하겠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오늘 이야기의 이삭이나 야곱처럼 행동한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과 삶, 남편이나 아내, 자녀와의 관계, 일과 직업, 공동체와 잃어버린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거슬러 물살을 거꾸로 헤엄치듯 살아간 적이 얼마나 있습니까? 여러분이 거역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면 여러분 자신이 훨씬 더 큰 상처를 입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거슬러 싸우느라 얼마나 많은 상처를 쌓아왔습니까? 그래도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셨고, 여러분이 그분의 자녀라면 야곱과 이삭과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셨다면 그 관계를 잃지 않습니다. 꼭 붙잡고 있는 아버지의 손에서 자녀가 스스로 뛰쳐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거슬러 몸부림치다 자기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는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그렇습니까? 옳은 길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싸우는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까? 지금 그런 길을 걷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기쁜 소식을 들으십시오. 복음의 기쁜 소식은 하나님께서 반역자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야곱 같은 사람도 이삭 같은 사람도 아브라함 같은 사람도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든 무슨 일을 저질렀든 여러분이나 저 같은 남자와 여자도 구원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최선을 바라시는 하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충실한 데서 시작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노력으로 벌어들일 수 없습니다. 또 그분의 자녀라면 그 사랑을 잃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설명할 때 두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첫째, 여러분과 저는 죄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을 어겼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겼으니 죽음의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죄 한 번만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단 한 번의 죄가 온 피조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우리는 한 번보다 훨씬 많이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책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문화는 이렇게 답합니다. “옆집 사람이나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착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벌 수는 없습니다.
다음 주에 보겠지만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셔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통해 올라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내려오셨습니다. 복음이 다루는 문제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이라면 그 해결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바라보시고 독생자를 보내어 구원하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삭과 아브라함도 구원하셨습니다. 그렇게 깨어진 가정을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도 불구하고 대대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여러분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깨어져 있어도 그 손을 붙잡고 그분의 아들을 믿으시기를 권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